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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바트] 라탄 싱의 실제모델인 라트나심하의 최후




메와 왕국의 왕, 구히르 왕조의 라왈 분파의 마지막 왕, 라트나심하 


델리 술탄국의 알라우딘 킬지에게 함락당한 메와 왕국의 마지막 왕은 라트나심하(Ratnasimha, 재위 1302~1303)이다. 그는 영화 ⟪파드마바트⟫에서 라탄 싱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말릭 무하마드 자야시의 1540년 작품 ⟪파드마바트⟫에서는 라탄 센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파드마바티의 남편의 실존 모델이라고 한다. 역사학자들이 파드마바티가 실존인물이 아닐 거라고 믿는 것에 반해, 라트나심하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다리바 사원에 1302년에 그가 16개의 금화를 봉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그가 재위한 시절에 그의 이름으로 발행한 금화 또한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14세기에 한 왕국의 왕이었음에도 기록이 매우 부족하고 그의 일생에 대한 논란도 많은데, 라트나심하가 역사의 패자이기 때문에 기록이 거의 남자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라트나심하의 치토가르 요새 by Ssjoshi111 [CC BY-SA 3.0], from Wikimedia Commons 


라자스탄, 구자라트 지역의 패권인 구히라 왕조(Guhira Dynasty)의 두 분파, 라왈 분파(Rawal branch)와 라나 분파(Rana branch) 중 라트나심하는 라왈 분파의 마지막 왕이다. (라트나심하가 알라우딘 킬지에게 패배해서 라왈 왕조는 라트나심하를 마지막으로 대가 끊어지고, 킬지가 델리로 돌아간 후에, 라왈 분파의 방계 가족이 이 지역(메와)에서 힘을 모아 시소디아 라즈풋 왕조를 일으킨다. 시소디아 왕조의 역사는 1300년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다)

역사 기록에서 라트나쉬마의 종말



영화 ⟪파드마바트⟫에서처럼 라트나심하가 라즈풋의 기개를 드높이는 장렬한 죽음을 맞았을까에 대해선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신빙성있는 기록들은 이 왕이 실제로 살아남아서 항복했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믿고싶지 않다 이거냐?)



무슬림 사관의 기록:

1303년 델리 술탄국의 지배자 알라우딘 칼지가 메와 왕국의 견고한 요새(현재지명: 치토르)를 침략할 때, 기록관인 아미르 쿠스라우가 동행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치토르의 지배자(라트나심하)가 알라우딘에게 항복했다고 한다.(치토르의 왕은 겁에 질려 덜덜 떨고있었다고 적었다.)  메와를 함락한 알라우딘 킬지는 하루 동안 30000명의 힌두교도들을 학살했지만, 치토르 지배자와 그의 가족들은 사면해줬다고 한다. 알라우딘은 자신의 어린 아들 키즈르 칸khizr Khan을 치토르의 지배자로 앉히고 말릭 샤힌을 실질적인 행정관으로 앉혔다. 그리고 치토르를 키즈라바드khizrabad로 이름을 바꾼 뒤 델리로 돌아갔다. 



아미르 쿠스라우의 기록은 14세기의 무슬림 사관인 지아우딘 바라니와 이사미의 기록으로도 뒷받침된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 기록이 정확할 것이라고 본다. 
다른 역사학자는 알라우딘 킬지가 하룻동안 3만명의 힌두교도를 학살하게 명령하면서 그들의 지배자인 왕은 살려뒀을까 의문을 갖는다. 













자인교도 작가의 기록:

자인교도 작가인 카카 수리는 1336년에 쓴 나비난다나 지노다라 프라반다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알라우딘은 치토르의 왕을 생포했다. 그의 전재산을 몰수한 뒤에, 그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원숭이같이 끌고다니게 만들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사실 영화 ⟪파드마바트⟫에서조차 라탄 싱은 무력해보였다




힌두교 역사가의 기록:

그럼, 라트마쉬마와 같은 힌두교 신자인 역사가의 기록은 어떨까? 1460년에 쓰여진  쿰발가르 프라샤스티는 구히라 왕조, 라나 분파의 쿰바카르나에 의해 발간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라트마심하는 떠났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이 '떠났다'가 천국으로 떠났다 즉 용감하게 싸워서 죽었다는 뜻이라는 주장과, 문맥상 말 그대로 떠났다, 즉 도망쳤다는 뜻이라는 주장이 둘 다 있다.




알라우딘 킬지의 치토르 포위가 있은 지 200년이 지나서 1500년대에 나온 시 ⟪파드마바트⟫에서는 라탄 센이 알라우딘이 메와에 오기도 전에 쿰발네르의 왕과 싸우다 전사했다고 나온다. 17세기 라즈풋 역사가도 그가 전투 중에 죽었다고 기록했다. 






내 추측에는, 라즈풋 왕 라트나심하의 최후가 매우 비참했던 것 같다. 1300년대의 기록들은 그가 전투에서 죽지 않았고 비굴하게 항복했고, 원숭이처럼 끌려다니는 수모를 당했다고 적혀있다. 그와 그의 가족(그는 부인이 15명이었다)은 알라우딘 킬지가 사면해주었다고 (킬지의 사관에 의해) 적혀있지만, 전재산을 몰수당하고 원숭이처럼 끌려다녔다는 기록, 그리고 그의 대에서 라왈 가계가 끊겼고, 불가 몇년 후에 이 지역에서 방계 가족이 시소디아 왕조를 다시 세웠음에도 라트나시마의 후손에 대한 기록조차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전재산을 몰수당하고 천민 카스트로 떨어지는 치욕적인 수모를 당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추측일 뿐이다) 그래서 몇백년 후에, 문학작품으로 '아름다운 부인을 탐하는 사악한 무슬림 폭군에 맞서 장렬하게 싸우다 죽은 왕'으로 재탄생시켜서 이 수모의 서러움을 달래준 게 아닐까 싶다. 라즈풋의 기개와 의리를 보여주는 ⟪파드마바트⟫의 조하르 또한 이 라즈풋 왕과 그의 가족들, 라즈풋들이 당시에 겪은 수모를 달래고 잊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이때 조하르가 실제로 행해졌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고 한다. 다만 힌두교 라즈풋 역사가들은 그 시절에 라즈풋 여성들이 조하르를 실행하곤 했으니까, 킬지의 치토르 함락때도 분명 있었을 거다!라고 주장할 뿐이다)




이렇게 적고나니, 파드마바티 이야기는 라즈풋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만들어진 전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즈풋들은 의리, 충정, 불의를 못참는 성격 등으로 유명한데, 라즈풋들은 라즈풋 왕인 라트나심하가 무슬림 왕에게 항복하고 수치를 당했다는 기록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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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공주같은 외모의 잔비 카푸르Jhanvi Kapoor(직업: 스리데리의 딸)

출처: 잔비 카푸르의 인스타그램



잔비 카푸르 Jhanvi Kapoor

1997년생.

스리데비의 첫째딸, 보니 카푸르의 딸이자
아르준 카푸르의 이복동생,
아닐 카푸르의 조카이자 소남 카푸르의 사촌이자,
샤히드 카푸르의 동생인 라이징 스타 이샨 카터의 여자친구,




엄마가 전설적인 여배우 스리데비(2018년2월에 죽음), 아빠인 보니 카푸르는 80~90년대에 영화제작자였다. 동생 쿠쉬 카푸르는 2000년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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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비 카푸르를 스리데비 딸로만 봤을 때는 정말 예뻤다. 2018년에 잔비 카푸르가 발리우드에서 영화 ⟪다닥⟫으로 배우로 (또는 스타로) 데뷔했는데, 형편없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인도에서 ⟪다닥⟫이 개봉했을 때 잔비 카푸르는 인터뷰에서 스리데비가 생전에 ⟪다닥⟫을 봤는 지, 뭐라고 했는 지 질문을 받고, 신나하며 '엄마는 러쉬 필름의 20분 가량을 보셨어요' 하지만 뭐라 말씀해주셨는지는 말 안할래요! 개인적인 것이니까요. 엄마는 엄마로서 딸에게 달콤한 말을 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매우 달라서 사람들은 우리를 비교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리고 예전에 엄마는 좋은 배우가 되려면,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하고 모두에게 예의발라야 하고, 절제해야 하며 시간도 엄수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스리데비가 딸을 밝고 참한 사람으로 키운 것 같다. 동영상을 봐도 스리데비와 쿠쉬는 예의가 바르고 정이 많아 보인다. 화려한 드레스에 진하게 화장하고 있어도 태도에서 평범한 여자아이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게 이 자매의 매력인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밝게 자란 아이들같아 보인다. (스리데비는 연기 신동으로 4살 때부터 연기를 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고 한다. 스리데비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브룩 쉴즈같이 유명한 아역스타들의 엄마들처럼 스리데비의 엄마도 극성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학교까지 안보내고 일을 시키다니... .... 스리데비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 찍는 일을 했어야 했기 때문에 또래와 어울리며 사회성을 발달시키지 못해서 극단적으로 수줍어하는 내향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잔비 카푸르는 원래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배우에 관심이 생겨서 로스 앤젤레스에서 연기 학원(액터스 스튜디오)을 다녔다. 발음 공부도 하고 춤 연습도 열심히 하고, 눈 밑이 붓지 않게 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등 배우가 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배우가 되겠다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외모 가꾼 것은 귀엽긴 한데, 연기를 너무 못하더라.


⟪다닥⟫에서 한장면.

  ⟪다닥⟫은 전설적인 영화 ⟪사이랏⟫의 리메이크이다. 2016년에 인도 전역에서 흥행한 ⟪사이랏⟫은 발리우드가 있는 마하라슈트라 주의 마라티어로 만든 영화인데, 10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매우 열정적이고 솔직하게 그린 영화이다.

 잔비 카푸르는 엄마 스리데비와 ⟪사이랏⟫을 보면서 엄마에게 저 여자 역으로 배우  데뷔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배역이 바로 자신의 것이 되는게 발리우드2세의 특권!)
 ⟪사이랏⟫의 여자 주인공은 능동적인 캐릭터로 인도 영화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여자 캐릭터이다. 중학생 나이의 여자 배우가 그 캐릭터를 매우 잘 표현했다. 그래서 ⟪다닥⟫에서 잔비 카푸르의 연기가 더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마라티 영화인 ⟪사이랏⟫이 북인도와 남인도에서 흥행하며 전국적으로 팬덤을 형성했기 때문에, 발리우드에서 발리우드2세 스타제작자가 스타2세 초짜들을 데리고 인공미를 팍팍나게 풍기며 만든 ⟪다닥⟫은  악평을 들었다.)




 잔비의 다음 영화는 또 카란 조하르가 제작하는 영화라고 한다. 카란 조하르는 처음에 잔비 카푸르와 영화 3편을 계약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년에 차기작으로 인도 최초의 여자 전투비행사 군잔 삭세나의 전기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한다. (하아 단독 주연할 연기력이 아니던데...)
 스리데비는 잔비가 배우가 되지 않고 결혼을 하길 바랬다고 한다. 하지만 '딸의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니, 딸이 배우로 잘해내면 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아, 좋은 엄마다. 본인이 보통 사람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딸들은 평범하길 바란 것 같다.




 그리고 모델이 되겠다는 여동생 쿠쉬 카푸르도 이제 배우가 되고 싶어해서 카란 조하르가 내년에 배우로 데뷔시켜줄 거라고 한다. 하하.





출처: 쿠쉬 카푸르의 인스타그램

출처:쿠쉬 카푸르의 인스타그램








 유부남인 보니 카푸르는 스리데비에게 반해 몇 년을 쫓아다닌 후에,
조강지처와 두 자식을 버리고 스리데비와 결혼하는데 성공했다.
 아르준 카푸르는 '스리데비가 자신에게 무심했다'고 스리데비를 비난하기도 했는데
(유명세를 끌고자 언론 플레이를 한 것) 얼마 지나지 않아 스리데비가 갑자기 죽어버리자
착한 양아들 모드로 돌아와 장례식에서 아들 노릇 열심히 했다.




스리데비가 죽은 후 엄마 없는 네 자식들이 사이가 많이 친해져서 요즘 자주 같이 붙어다니는데
매우 보기 좋다. 저 4명 다 보니 카푸르의 자식들이다.




그리고 잔비 카푸르의 영상 하나 더.




⟪수이 다가: 메이드 인 인디아⟫가 개봉했을 때(수이 다가는 바늘과 실이라는 뜻이다), 발리우드 스타들이 바늘에 실을 꿰는 영상을 공유하는 홍보를 했었다. 위의 영상이 그 홍보 영상이다.
자매가 둘 다 귀엽다.






잔비 카푸르의 영화


<고스트 스토리>  https://offhoarder.blogspot.com/2020/05/ghost-storie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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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칸은 정말로 바람을 폈을까?

출처: Bollywood Hungama



발리우드의 개념 배우 아미르 칸의 첫번째 결혼: 



사랑스런 옆집 소녀 Leena Dutta 1986~2002



 아미르 칸이 리나 더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20살, 리나 더트는 18살이었다.
아역배우 출신의 무명 배우였던 아미르 칸은 옆집 소녀인 리나더트에게 반해 자신의 피로 쓴 러브레터를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구애해서 결혼했다.

 1986년 결혼했을 때, 아미르 칸은 21살이었다. 아미르 칸은  유명한 발리우드 제작자인 나시르 후세인의 조카이다. 아미르의 아빠인 타히르 후세인도 영화제작자이다. 대개 발리우드 2세들이 그러듯, 아미르 칸도 '영화 조감독으로 1편 찍고 영화 주연으로 데뷔하기'코스를 밟는다. 아미르 칸은 나시르 후세인이 제작하고 그의 아들인 만수르 칸(아미르칸에게는 사촌)이 감독 데뷔하는 ⟪카야맛 세 카야맛 탁Qayamat se Qayamat Tak⟫((1988)의 주연으로 발리우드 데뷔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로맨스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신인배우 아미르 칸이 막 결혼한 유부남이었다는 거!
그래서 제작자들과 아미르 칸은 결혼한 사실을 숨기기로 한다.
대신에 나시르 후세인은 조카며느리인 리나 더트에게 이 영화에서 작은 배역을 줬다.




⟪카야맛 세 카야맛 탁Qayamat se Qayamat Tak⟫에서 Papa Kehte Hain 부르는 장면. 
4분5분 00초에 리나 더트가 나온다.


 스타로 떠야 하는 아미르 칸의 입장에선 결혼 사실을 숨긴 것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해서 스타가 된 후에, 아미르 칸은 결혼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 묻는 기자에게
유부남이 맞다고 인정했다.
 아미르 칸은 리나 더트와 1986년부터 2002년까지 16년 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 물론 90년대 후반에 들어 아미르 칸이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들은 있었지만, 증거 없는 소문일 뿐, 둘의 사이는 견고해서, 2002년에 아미르 칸은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 ⟪라간⟫에 리나 더트를 프로듀서로 참여시킨다.
그런데 ⟪라간⟫의 촬영장에서 아미르 칸은 현재 부인인 키란 라오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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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르 칸과 리나 더트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둘이 이혼했을 때 막내는 겨우 4살이었다. (위의 사진이 리나 더트와 딸이다. 첫째 아들은 2017년에 배우로 데뷔할 거라는 기사가 났으나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아미르 칸이 조카 임란 칸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영화를 제작하고 여러 모로 지원한 것을 생각하면, 전아내와 낳은 아들도 잘 챙겨줄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데뷔했다는 소식은 없다.





아미르 칸의 두번째 결혼 : 2005~ 현재




왕족 혈통의 똑똑한 커리어우먼 Kiran Rao  



아미르 칸은 영화 ⟪라간⟫을 촬영장에서 조연출인 키란 라오를 만난다.


아미르 칸에 따르면 ⟪라간⟫ 촬영 때는 얼굴만 아는 정도이고, 아는 사이라고 말할 정도의 친분도 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둘이 친해진 것은 아미르 칸의 말에 따르면, 아미르 칸이 이혼하고 난 뒤, 한~참 후에 키란 라오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녀와 대화가 매우 잘 통해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라고 한다.
 키란 라오도 아미르 칸과 동거를 시작한 것은 아미르 칸이 이혼한 후였다, 자신이 아미르칸과 통화했을 때, 아미르 칸은 사귀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지금도 사람들은 이들 커플이 불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간⟫ 촬영장에서 아미르 칸과 키란 라오의 사진을 보면, 얼굴만 아는 사이 같지는 않아보인다.


 하여간 라간의 촬영이 끝나고 난 뒤, 아미르 칸은 리나 더타는 이혼을 한다.
(두 아이의 양육권은 리나 더타가 가져갔다. 아미르 칸은 일주일에 몇 번, 아이들을 만날 권리를 가졌다)
 그리고 키란 라오와 아미르 칸은 1년 반 동안 동거한 후에 2005년에 결혼한다.
(인도는 한국보다 보수적이지만, 발리우드 스타 중에 '쿨'하게 동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2004년에 인도에서 동거하는 건 매우 파격적이다. 인도는 아직도 대다수 영화에서 키스도 하지 않는다.)


시골 처녀였던 가정주부 리나 두타와 달리, 키란 라오는 왕족의 후손에다가 대도시에서 자랐고 대학도 나온 여자이다. 여러모로 수퍼스타인 깨어있는 지성인 아미르 칸의 눈높이에 맞는 파트너인 듯싶다.
(사족인데, 키란 라오는 ⟪파드마바트⟫에 나온 발리우드 배우 아디티 라오 히다리의 사촌이다. 아디티 라오 히다리는 엄마도 왕족 후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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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튼 이 부부는 아들 하나 낳고, 카메라 앞에서 금슬도 과시하며 잘 살고 있다.(위의 사진은 2018년 아미르 칸의 생일파티 때 파파라치 앞에서 케이크 자른 후 애정표현을 하는 모습)





 아미르 칸의 제작사에서 키란 라오의 데뷔 필름도 만들었다.



 쿨한 뭄바이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인 ⟪도비 가트⟫는 2011년 영화인데 포스터가 매우 예쁘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한글자막 있음). 포스터가 예뻐서 봤는데 나는 그냥 그랬다. 이 영화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한테는 좀 유치했다. 이 영화 보고난 이후로 아미르 칸에 대해 시큰둥해졌을 정도.
이 영화 이후로 키란 라오가 감독한 영화는 없다. 현재 키란 라오는  아미르 칸 프로덕션에서 제작자로
있으며, 델리 벨리(넷플릭스에 있음, 코미디영화임), 탈라시, 당갈, 시크릿수퍼스타 등을 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부부가 아미르 칸의 첫번째 부인 리나 더타와 친하다는 점. 실상이 어찌 되었든 카메라 앞에서 친하다. 이런 관계가 저절로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혼 후에도 서로 원만한 사이가 되도록 노력을 많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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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사진 설명: 아미르 칸의 가족. 가장 왼쪽이 곧 배우로 데뷔하겠다는 큰아들, 오른쪽 여자가 리나 더트, 그 옆이 임란 칸과 부인, 임란 칸의 옆에 아미르 칸의 딸, 아미르 칸과 현재 부인)







 몇 년 전에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아이가 아미르 칸의 아이라고 주장했었다. 저널리스트 제시카 하인스Jessica Hines는 발리우드에 대한 책을 만들러 뭄바이에 있을 때, 아미르 칸과 사랑에 빠졌고, 동거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미르 칸이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자, 낙태하기를 종용하고 그녀와 관계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낙태하지 않고, 영국으로 돌아가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들, Jaan은 영국 보그에서 아동 모델을 했기 때문에 인터넷에 검색하면 사진이 나온다.




⟪빅 식 Big Sick⟫에서 멋진 연기를 했던 인도 배우 아누팜 커가 2015년에 제시카 하인스와 그녀의 아이들과 찍을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저 애가 아미르 아들이냐고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에 대해 아미르 칸으로부터 공식적 반응도 없는 데다가, 희한하게 후속 기사도 없다. 그리고 저 사진이 3년전 사진인데 아미르의 아들이라는 잔이 매우 어려보여서, 아미르칸이 제시카 하인스와 언제 만나서 동거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제시카 하인즈의 주장에 따르면, 제시카 하인즈는 아미르 칸이 2005년에 ⟪굴람⟫을 찍던 시기에 만났다는데, ⟪굴람⟫은 1998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아미르 칸이 매우 개념있어보이는 발언도 수시로 하고, 인도의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토크쇼도 진행했고, 교훈과 가르침을 '내리는' 영화도 많이 찍다 보니,  불륜이나 사생아 같은 루머가 다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시간이 말해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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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전통의상 도티Dhoti와 룽기Lungi - 국내도입이 시급한 남성용 하의

source: "Dhoti in Delhi" by Wen-Yan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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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oti도티



영화⟪gold⟫








영화 ⟪gold⟫








영화 ⟪swades⟫




도티는  바지와 비슷한 형태로 몸에 두르는 치마이다.

도티dhoti는 지역에 따라 판체panche(텔루구), 베스티 vesti(타밀), mundu(말라얄람),
 dhotar(마라티), chaadra(펀자비) 등으로 부른다.



여성이 입는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가 큰 천 한 장을 온 몸에 감아 원피스 드레스를 완성하듯이,
도티도 넓은 천 한장을 몸에 감아서 바지 형태를 완성한다.



도티 입는 방법:




보다시피 도티는 몸에 두른 천의 한쪽 끝을 다리 사이로 통과시켜서 바지와 비슷한 모양새를 만든다.
요즘은 천을 재봉을 해서 바지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변형된 도티가 인기를 끌면서,
여성용 도티도 만들어졌다. (여성들은 쿠르타 아래에 도티를 입는다)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LUNGI 룽기





룽기는 남인도에서 즐겨 입는 남성용 치마이다.
남인도가 무더운 지방이다보니, 다리 사이가 뻥 뚫린 치마가 남성용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가만 보면, 더운 지방은 의복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건축이나 토목이 발달한 것에 비해, 의상은 인도처럼 큰 천조각을 걸치는 수준이었다. 1년 내내 더우니까, 몸을 가릴 수준 정도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가 보다. 추운 지방은 몸 구석구석 추위를 막기 위해 재단 기술이 발달하게 되고...)





 룽기가 편하다보니, 현재에도 많이 입는 것 같다. 시대배경이 현재인 말라얄람 영화나 타밀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주로 흰색인 도티와 달리 룽기는 화려한 프린트가 특징이다.
 룽기는 여자도 입을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여자가 룽기를 입은 것을 본 적이 없다. 남인도가 배경인 북인도 영화 ⟪첸나이 익스프레스⟫에 나온 춤 The Lungi Dance에서 디피카 파두콘이 룽기를 입었다. 


발리우드 영화 ⟪첸나이 익스프레스⟫의 'the lungi dance'를 추는 Deepika Padocone by Laura Lee Dooley



룽기는 길게 내려 입다가 더우면 반으로 접을 수 있다. 그러면, 남성들을 위한 깜찍한 미니스커트가 된다!
남자들은 접힌 치마에 이것저것 수셔박아 주머니로 활용한다.


컬러풀한 룽기를 반으로 접고, 그 안에 곡물을 넣었다. 타밀 영화⟪merku thodarchi malai⟫




우리나라가 여름이 매우 덥다보니, 남자들도 여름에 치마를 입으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룽기가 편하고 시원해보이면서 남자다운 치마라서,
룽기는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집 앞 수퍼 오갈 때 룽기를 입으면 매우 편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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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 Kheer - 북인도의 대표적인 디저트 음식


source: Shivangisj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키르는 북인도에서 흔하게 먹는 디저트 류의 인도음식이다. 부처도 즐겨 먹었다고 하니까, 역사가 3000년은 된 오래된 인도 음식으로 이제 인도 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즐겨먹는다. 또한 8세기~10세기에 로마인들을 통해 쌀이 유럽에 소개될 때 키르의 조리법 또한 유럽에 소개되어서 영국의 라이스 푸딩이 키르가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힌디로 키르라고 하고, 북인도의 펀잡 등의 지역에서는 피르니(phirni, firni)라고 부르며, 케랄라주에서는 말라얄람어로 파야삼(payasasm), 카나타카주에서는 칸나다어로 파야사 (payasa)라고 부른다


키르는 인도영화(힌디를 쓰는 발리우드 영화)나 북인도가 배경인 소설을 보면 흔하게 언급된다. 그 정도로 유명한 디저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것 같다. 굴라문, 젤라비에 비해서 말이다.




위키에 따르면, 


키르(힌디어: खीर)는 쌀, 밀, 타피오카 등에 설탕과 우유를 넣어 만드는 남아시아의 단 음식이다.[ 우유 대신 물소젖 등을 쓰기도 하며, 아몬드밀크나 코코넛밀크 등을 쓰기도 한다. 카다멈, 사프란 등 향신료와 캐슈, 피스타치오, 아몬드 등 견과류, 건포도 등을 넣어 만들며, 차거나 따뜻하게 먹는다.



달달한 우유에 밥 말은 거 연상된다.
한국 음식 중에 쌀로 만든 달달한 디저트 생각하면(떡, 약과, 식혜 등) 맛날 거 같기도 하다.







키르는 말라얄람, 타밀, 텔루구 말로 파야삼, 칸나다어로 파야사, 그리고 벵갈어로 파예시라고 부르는데, 남인도에서는 단립종의 쌀로 만들어서 따뜻하게 먹는데, 주로 식전에 먹는다고 한다. 반면에, 북인도에서는 장립종 쌀로 만들고 차갑게 만들어서 디저트로 내놓는다고 한다.








(이 사이트에 보면 키르를 만드는 방법이 상세하게 나와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키르의 레시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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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영화 스와데스의 여자주인공, 가야트리 조쉬




가야트리 조쉬 Gayatri Joshi,

⟪스와데스⟫에서 북인도의 외진 시골 마을인 차란푸르에서
학교 선생을 하는 20대 여자인데,
장소를 불문하고 밤낮으로 굵은 가짜속눈썹을 붙이고
진한 화장을 하고 있어서 시골과 어울리지 않아
비현실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래도 예쁘다.



저 가짜 속눈썹이 매우 거슬리지만, 어쨋든 예쁘긴 예뻤다.




 가짜속눈썹에 익숙해지고나니, 이 배우가 연기도 괜찮고, 편안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뛰어나진 않지만 못하지 않는다. 남자주인공 서포트하는 예쁜 여자 역을 무난하게 잘 연기했다. 스와데스가 데뷔작으로 연기 초짜이다. 그거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잘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이런 여자배우가 유명하지 않을까
의아해서 찾아봤다.







 가야트리 조쉬 GAYATRI JOSHI


 영문위키에는 74년생, IMDB에는 77년생인 그녀는 1999년에 페미나 미스 인디아라는 미인대회에 입상해서 모델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전에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나그푸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가족들이 마하트라슈트라 주의 뭄바이로 이사했다 (같은 주 내에서 이사한 것이라 언어 문제는 없었겠다.)
뭄바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LG, 폰즈, 선실크 등 유명브랜드의 광고모델을 했다.

(이것을 왜 쓰냐 하면, ⟪스와데스⟫에서는 그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브라만도 자신의 딸들이 4학년을 마치면 학교를 더는 보내지 않는다. 여자에게 교육은 4학년이면 충분하다며 시집갈 때까지 집안 일을 시킨다. 발리우드 여자 배우 중에서 자수성가한 배우들은 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런 것을 보면 신분제 사회인 인도에서 낮은 카스트 출신으로 초등학교도 못다닐 형편인 집안에서 태어나 발리우드 톱스타로 성공한 경우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가야트리 조쉬는 2004년 ⟪스와데스⟫에서 수퍼스타 샤룩 칸의 상대역으로 드디어 영화배우로 데뷔,
2005년에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서 배우로 인정을 받고 나서, 
2005년에 인도 최고 부자 중 1명이라는뭄바이 부동산 재벌과 결혼해서 




은퇴해버렸다!




그래서 그녀가 나온 작품이

⟪스와데스⟫ 딱 한개이다.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 있는 거 보면 아까운 재능이다.

어느 유명 감독이 가야트리 조쉬를 자신의 영화에 캐스팅하려고 했는데, 그 영화감독이 여배우에게 촬영장에서나 사적으로나 혹독하기로 악명높았다고 한다. 가야트리 조쉬는 배우로서 커리어냐, 결혼이냐 고민했는데, ⟪스와데스⟫의 감독이 결혼하라고 조언해주었다고 한다.   










Embed from Getty Images

가야트리 조쉬의 영화를 더는 못보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재벌집 아드님이 젊고 잘생긴 거.
둘이 잘 어울린다.


아들 둘 낳고 현재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가야트리 조쉬의 남편의 말에 따르면, 서로 안면만 있는 사이였는데,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함께 보낼 여자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가야트리 조쉬가 매우 우아하고 예쁘게 생겨서 나도 자꾸 내 눈에 띄게 되면 그런 느낌 받을 것 같다. 쳇.
 가야트리 조쉬는 연예 활동은 일절 안하지만(sns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잔 칸(산제이 칸의 딸이자 흐리틱 로샨의 전부인)과 트윙클 칸나(발리우드 전설 라제시 칸나의 딸이자 악쉐이 쿠마르의 부인) 등과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그녀의 근황이 궁금하면, 그들의 SNS를 통해서 가야트리 조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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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영화 리뷰] 스와데스 Swades we, the people 샤룩 칸의 계몽주의 영화



Swades 

we, the people






"인도인들은 절대 바뀌지 않아
당신도 전형적인 인도인이야"
VS
"당신 무슨 카스트야?: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서 본 영화. 포스터에서 서정적인 분위기와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호기심이 들었다. 그런데, 스와데스는 무려 3시간 반짜리 계몽영화이다.(아미르 칸의 영화보다 훈계하는 정도가 약해서 그나마 행이다) 스와데스는 인도에서 흥행에 실패했는데, 개봉 당시에 영화 홍보가 미흡했고, 샤룩 칸의 흥행작인 비르-자라가 개봉한지 한달밖에 안되었고, 샤룩 칸 팬들이 좋아하는 '사랑에 쩔쩔매는 전형적인 샤룩칸 캐릭터'가 아니어서, 그리고 스와데스가 인도의 골치아픈 문제점을 지적하는 교육적인 영화라서 (삶에 지친 인도인들이 영화에서조차 비참한 현실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다고 한다. 




스와데스의 주인공인 모한 바르가바(샤룩 칸)는 미국 NASA에서 인공위성을 만드는 일을 하는 전도유망한 과학자인데, 자기 유모를 찾으러 인도 시골에 갔다가, 어메이징 인디아에  홀딱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저런... ..
신지식인인 모한이 인도 시골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다 같이 힘을 합쳐서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계몽적인 내용은, 나한테는 오래전 순진한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한국의 1960년대 영화에나 나올 내용... 그러나 스와데스는 2004년이 배경이다.(인공위성, 핸드폰, 인터넷의 혜택을 누리면서 카스트는 우리의 전통이니까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  스와데스를 보면서 인도도 새마을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전에 한국이 누린 행운을 인도는 갖지 못한 거 같다.






스와데스는 발리우드 영화치곤 카스트에 대해 노골적이다.











판차얏의 장로들은 모한 바르가바(샤룩 칸)에게 어디 카스트냐 묻고, 모한이 브라민이라고 대답하자 만족하며, 누구누구는 천한 카스트이니까 어울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 동네(차란푸르)의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기 때문에 (브라민도 여자는 시집갈 교육이면 충분하다고 4학년까지만 보낸다) 모한이 장로들에게 아이들은 공부해야한다고 말하자, 이들은 천한 카스트와 같이 공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르나 카스트 네 종류 중에 브라민, 크샤트리야, 바이샤가 상위 카스트이고 수드라가 낮은 카스트이다. 천민인 달릿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모한은 도자기 공인들을 찾아가 학교를 다니면 이치에 밝아져서 상인들에게 헐값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하자,


이들은 헛된 희망을 갖게 하지 말라고 한다.
(이들은 도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보아 북인도의 카마르 카스트인 것 같다. 수드라 계급으로 북인도에서 기타소외계층OBC이다)




옆마을의 농부는 원래 직조공 카스트였는데(수드라 계급, 북인도에서 OBC이다) 직조 기계의 공급으로 직조 일을 못하게되서 농부로 전업했더니, 직조공은 직조공만 해야한다고 사람들이 농업용수를 끊고 농산물도 사주지 않아서 굶어죽을 지경이다.(그와중에 어린 자식이 다섯명이나 있다.)



스와데스에 나오는 카스트 풍경은 다른 발리우드 영화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라 흥미로웠으나, 역시나 발리우드 영화답게, 카스트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 이상 깊게 다루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곧 너무나 착하게 화합한다.



영화의 주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장면들(카스트, 전기와 물 등 인프라 부족 등 인도의 어두운 단면들)은 가벼운 에피소드로 소모되어 버리고 샤룩 칸 1명의 원맨쇼로 며칠만에 시골 사람들이 다 마음을 고쳐먹고 변화를 이루며, 결국 샤룩칸은 '아름다운 인도 시골'에 정착한다. 이 긍정적인 국수주의 영화는 무려 3시간 반이나 하는데, 싱거운 영화라서 굳이 이 시간을 들여서 봐야할까 싶다.













그래도 스와데스 안의 시골 풍경은 아름다웠다.





스와데스는 델리에서 200킬로 정도 떨어진 찬디가르라는 가상의 마을이 배경이다.
(찬디가르라는 이름의 마을이 인도에 있긴 한데,  서벵골에 있고 델리에서 2000킬로미터 떨어져있다.)

실제 촬영 장소는 마하라슈트라의 와이Wai라는 마을이다. 




와이Wai 마을에 있는 메하발리 가트Mehavali Ghat는 영화에서 라마야나 연극을 하거나 씨름을 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스와데스에 나오는 판차얏(마을 회의)을 보고 판차얏을 검색해봤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카스트 검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와데스의 여자주인공, 가야트리 조쉬에 대하여
https://offhoarder.blogspot.com/2018/12/gayatri-joshi.html








스와데스 2004

Swades We, the people 


★★


감독: 아슈토시 고와리커
작곡: A.R 아흐만
출연: 샤룩 칸
가야트리 조쉬

촬영장소: 와이
Wai(Maharashtra)

3시간 30분
춤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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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서치 searching 2018 - 내가 데이비드가 된 기분






이 영화 재밌다!

재밌어서 이 영화의 화면에 감정적으로 딱 달라붙어서 봤다!
영화에 쏘옥 빠져 본 게 아니라, 딱 달라붙어서 봤다. 

영화를 보면 뭔 말인지 안다.







깔끔한 영화

내가 pov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영화가 시점샷을 고수해야하니, 화면이 답답하고 지루해질 뿐 아니라, 형식을 고집하느라 이야기가 그것에 종속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를 시작한 아이디어는 쌈박한데 결국엔 영화가 아이디어에 먹히는 꼴? 그러나 ⟪서치searching⟫는 형식에 얽매인 억지스런 이야기 장치가 없어서 군더더기 없이 갈등을 전개한다.  각본 쓴 작가와 감독이 pov샷을 위한 스토리텔링과 연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후반에 주인공이 이동하는 장면을 네이게이션 화면으로 대체한 것. 자동차 안에서 페이스타임을 하게끔 설정한다던가,  어두운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깔끔했고, 영화 화면 안의 컴퓨터 화면 안의 앱 화면만 보다가 넓고 단순한 화면을 보니 눈이 시원해서(?) 좋았다)



주인공인 데이비드 김은 딸이 이틀째 집에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검색해본다. 아빠가 뛰쳐나가서 납치범과 싸워 딸을 구해내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보통 사람이라면 경찰이 종종 전해주는 소식에만 의존해서 가만히 기다리는 것 밖에 할 게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김은 컴퓨터 앞에 앉아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해하는데, 옛날컴퓨터에서 아내의 주소록에서 나온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보고 딸 친구들의 sns을 보면서, 자신이 딸에 대해 많이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관객은 Pov 화면으로 영화를 데이비드의 눈높이로 보면서 데이비드가 딸에 대해 관객만큼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이,  ⟪서치⟫가 컴퓨터-POV 영화이다보니 데이비드가 보는 것만 관객이 볼 수 있다. 그래서 관객이 데이비드의 눈높이로 데이비드가 컴퓨터로 작업하는 화면만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적으로도 데이비드에게 밀착하게 된다.




서치의 오프닝시퀀스

관객이 데이비드에게 데이비드에게 감정적으로 빠르게 동화되게하는  장치가 오프닝시퀀스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오래된 ms 윈도우 화면을 통해 데이비드 가족의 과거사를 보여주는데,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면 익숙할 사랑스런 영상들 그리고 이 가족이 사랑하는 엄마/아내를 잃었음을 알리는 장면(노골적이지 않다, 엄마가 죽었음을 아이캘린더의 화면으로 간접적으로 전해주니 슬픔도 간접적으로 전해져서 더 슬펐다)을 보면서 관객은 이미 이 가족에게 감정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느끼는 가족을 잃은 상처는 영화 내내 데이비드의 무기력한 표정에 더해지고, 영화 전반에 상실감이 깊게 깔려있었다.

















존 조와 데브라 메싱

존 조는 이 무기력함과 상실감을 너무나 잘 연기했다. 나는 존 조가 인종색이 없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인종이나 문화권을 초월한 호감도와 평범함이 이 배우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아메리칸 파이의 milf 장면만 해도,  친구 엄마의 사진을 보며 MILF MILF를 외치며 사진을 개걸스럽게 핥는 똘아이 짓은 존 조가 엄마 말을 잘 듣는 평범한 남자아이처럼 생겼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으로 웃겼었다. 그런데 영화 ⟪서치⟫에서 오랜만에 본 존 조의 모습은 많이 늙어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니까, 존 조가 늙은 게 아니라 데이비드 김이 상실과 무기력으로 매우 지친 모습이어서 늙어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데브라 메싱. 나는 이 배우가 코미디 연기를 매우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오랜만에 영화에서 봐서 매우 반가웠다. 데브라 메싱이 데이비드 김의 유일한 희망줄인 경찰 역을 연기했는데, 관객인 내가 데이비드 김에게 심리적으로 일치하고 있다보니, 데브라 메싱의 경찰은  데이비드 김의 일에 적극적이고 우호적이라서 좋았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뒤인 지금 이 글을 쓰며 데브라 메싱의 표정을 다시 생각해보니  결코 우호적이거나 적극적이거나 친절하지 않았다. 지금 기억나는 데보라 메싱의 모습은 차갑고 냉혹하고 경직되어 보였다. ⟪서치⟫를 다시 보면, 데브라 메싱의 표정연기를 유심히 보고싶다. 멋진 배우다.


감독 아니쉬 차간티

아니쉬 차간티Aneesh Chaganty는 91년생(올해 27살)로 USC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구글글라스로 만든 2분짜리 단편영화 ⟪씨앗SEEDS⟫이 유투브에서 히트를 쳐서, 구글에 스카우트되어 뉴욕에 있는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2년간 광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서치⟫의 공동각본인  세브 오하니안Sev Ohanian과 감독인 아니쉬 차간티Aneesh Chaganty는 USC 학생시절부터  함께 작업한 파트너라고 한다. ⟪서치⟫의 제작자인 나탈리 카사비안Nathalie Qasabian도 USC졸업생이다.

이 3명은 지금 차기작 RUN을 촬영하고 있다. ⟪서치⟫가 촬영에 14일을 썻지만 후반작업에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서치⟫의 성공 덕에 RUN의 후반작업은 더 수월할 지도 모른다. 그럼 내년에 이들의 차기작을 볼 수 있을지도.









서치 Searching 2018

★★★★☆

미국영화, 스릴러

감독: 아니쉬 차간티 Aneesh Chaganty
출연: 존 조 Joh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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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완벽주의자 - 설득력있는 기괴함




★★★☆

완벽주의자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75년에 나온 단편집 ⟪여성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 Little Tales of Misogyny⟫과 1979년에 나온 단편집인 ⟪바람속에서 서서히,서서히 Slowly, Slowly in the Wind⟫를 합쳐 놓은 것이다.


⟪완벽주의자⟫의 앞부분은 ⟪여성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인데 단편들이 매우 짧은 꽁트인데다가, 기승전결의 완성도도 없이 제멋대로인 이야기들이라서 당황했다. 이런 식이면 읽지 말아야할까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이 자유분방함에 적응하니 ⟪여성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은 매우 웃기고 재치있는 개망나니같은 글이라 읽기 즐거웠다.  페미니스트들의 속을 뒤집어놓을 만한 가정들이 매우 냉소적이고 적나라해서재밌게 감상했다. 꽃뱀에 대한 묘사는 가끔 생각날 것 같았다. 꽃뱀으로 성공해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여자들도 많은데,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그런 환상 대신에 처절한 환상을 가정했다. (이 단편소설집은 환상소설 장르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설정들이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만큼 허무맹랑했다.)


뒷부분인 ⟪바람속에서 서서히,서서히⟫는 발칙한 상상력에 기댄 콩트인 ⟪여성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에 비해 단편소설다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는데, 여전히 내용들이 기발하고 잔혹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다운 인물묘사나 스릴러로 재미는  ⟪바람속에서 서서히,서서히⟫가 더 좋았다. 



이 단편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비정상이고 비참하다.
그러나 인물들에 대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묘사를 읽다 보면
이 인물들은 다 평범한 사람들이고, 어디선가 본 모습같고, 누구나 저럴 수도 있다고 설득되어버리다못해

책을 거의 다 읽을 때가 되면

나도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행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ㅋㅋㅋ

그러니, 성장기 젊은이들에겐 권하지 못할 책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집인 ⟪여성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1975, ⟪바람속에서 서서히,서서히⟫ 1979의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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