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니파트〉에 나온 마라타 제국의 영토 |
마라타 제국 Maratha Empire
마라티 제국은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 주의 마라티 인들이 세운 나라로 1700년대에 인도의 북부와 중부 대다수를 점령한 18세기 인도 대륙의 강호였다.
무굴제국은 제국의 부흥을 이끈 황제 아우랑제브(타지 마할을 만든 샤 자한의 손자)가 1707년에 죽은 후 쇠퇴의 길을 걷고 1600년대 중반에 세워진 힌두교 국가인 마라티 제국이 1700년대에 대륙을 평정하고 1818년에 영국제국에 의해 해체된다.
무굴제국 최대 영토 1700년 Gabagool / CC BY |
마라타 제국 1760년 Charles Colbeck / Public domain |
영인도 제국 1909년 Edinburgh Geographical Institute; J. G. Bartholomew and Sons. / Public domain |
마라타 왕국은 발리우드에서 인기있는 사극 소재인데 인도의 근대 역사가 외국에서 침략해서 세운 무슬림 왕국인 무굴제국 치하 3백년, 힌두교 인도인들이 세운 마라티 제국 150년, 그 후에 새로운 외세인 대영제국의 역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마라티 제국이 짧은 전성기를 누렸음에도 북부 인도인들 특히 힌두교인들이 마라타 제국에 애정을 갖는 것 같다.
마라타 제국은 힌두교 국가였지만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했다. 그래서 동맹국이나 부하 중에 무슬림도 있었다.
마라타 제국 vs 마라타 연맹
마라타 제국은 차트라바티(황제)가 있는 왕국이나 후에 페슈와(수상)인 바지라오가 영토를 확장하고 권력이 막강해져서 실질적 통치자가 되었다. 일본이 천황이 명목상의 왕이었고 쇼군이 실제 권력자였던 것처럼 마라타 왕국도 차트라바티는 명목상의 왕이었고 실제 권력자는 페슈와였다. 페슈와 바지라오의 영토는 푸네였다. 그래서 푸네가 마라타 제국의 실질적 수도였다. 황제는 다른 도시에 있었다. 마라타 제국은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많은 힌두교 지역들을 제국 아래로 영입했다. 인도 애국주의자들은 이 나라를 마라타 제국이라 부르는 반면에, 영국 역사학자들은 마라타 연맹(Maratha confederacy)라고 부른다. 영국이 마라타 제국을 해체시키고 식민지화했기때문에 영국 사학자들이 제국보다 연맹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듯.
마라타 국기 |
마라타 인물
- 차트라바티 시바지
차트라바티 시바지의 초상화 Unknown author / CC BY-SA |
시바지 보살레(1630년~1680, 재위기간 1674~1680)는 마라타 제국을 건립한 정복왕이다. 차트라바티는 마라티어로 황제란 뜻이다. 시바지 보슬레는 남인도를 침략해서 마하라슈트라 주의 작은 나라였던 마라타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힌두교 전통을 다시 살렸다.
인도에서 인기가 높은 왕으로 대중문화에서 말을 타고 칼을 높게 든 정복왕의 이미지와 함께 어진 왕으로 묘사된다. 마하라슈트라 주의 뭄바이의 국제공항 이름이 차트라바티 시바지 공항이다.
차트라바티 시바지의 동상 pixabay |
- 바지라오 1세
바지라오(1700~1740, 재위기간 1720~1740)는 페슈와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살의 나이에 페슈와가 된다. 그는 39살에 죽을때까지 정복에 나서서 전승한 명장이었다. 바지라오는 마라타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자신의 영토 푸네에 샤니와르와다 궁전 요새를 지었다.
샤니와르 와다 궁전 요새 Aakash.gautam / CC BY-SA |
샤니와르 와다 궁전 요새의 정원 pixabay |
뛰어난 정복자이자 통치자였던 바지라오는 사랑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정략 결혼한 부인과 사이가 좋았으며 후에 일부일처제 가풍을 어기고 결혼한 두번째 부인 마스타니와 사랑때문에 집안과 싸운 것도 유명하다. 바지라오가 샤니와르 와다 궁전에는 마스타니의 별궁이 있는데 왕궁 밖과 통하는 전용 출입문이 따로 있다고 한다. 바지라오가 집안 사람들로부터 마스타니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해준 곳이다.
- 사다시브라오 바우
사다시브라오 바우 |
사다시브라오 바우(1930년~1961)는 바지라오의 조카로, 바지라오의 사후 페슈와가 된 바지라오의 아들 발라지 바지라오의 디완이었다. 디완은 페슈와의 총리. 황제의 총리인 페슈와가 실질적 군주이고 그 군주의 총리가 디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바지라오와 동생의 사이는 각별했는데, 동생은 31살의 나이에 전사했다. 사다시브라오도 30살의 어린 나이에 전사한다. 사다시브라오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20대 때 정치력과 군사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래서 발라지 바지라오의 부인은 남편이 시다시브라오를 차기 페슈와로 앉힐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파니파트 전투에서 전사하고 그의 죽음과 함께 마라타 제국의 상승세도 꺾인다.
- 마스타니
무슬림 풍의 옷을 입은 마스타니 Mughal School / Public domain |
북인도의 라즈푸트 힌두 왕국 분델칸드의 공주. 왕과 페르시안(이란인) 첩 사이에 낳은 딸이다. 엄마가 무슬림이기때문에 마스타니도 무슬림으로 취급받았다. 31살의 늙은 나이에 유부남 바지라오에게 시집갔다. 아버지 왕이 지참금으로 자신의 영토의 1/3을 바지라오에게 떼어줬다. 이 영토는 잔시, 사가르, 칼피이다.마스타니는 바지라오와 사이에 아들 삼셰르 바하두르를 낳았다. 마스타니는 힌두교인처럼 옷을 입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스타니의 엄마가 이란인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마스타니는 무슬림으로 취급받았고, 그녀의 아들 삼셰르 바하두르도 무슬림 취급을 받았다. 바지라오가 삼셰르를 크리슈나라오라고 힌두 이름을 지어주고 힌두 세례를 받게하려고 했으나, 힌두 사제들이 무슬림 엄마의 아들은 무슬림이라며 거절했었다.삼셰르 바하두르는 사다시브라오 바우와 함께 파니파트 전투에서 전사한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살아남아 후에 잔시의 여왕 락시미바이와 함께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한다. 영국이 이들과 전투에서 승리 후 마스타니 후손들의 영지를 폐지하고 몰수했다. 그후 후손들은 현재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잔시의 여왕 락쉬미바이. 잔시는 마스타니의 지참금으로 바지라오의 영토가 된 곳임.
락쉬미바이는 마라타인이다. 마라티 브라민 집안 출신으로 페슈와 바지라오 2세의 영지 내에서 자랐다.
락슈미바이에 대해서 ☛ https://offhoarder.blogspot.com/2019/07/rani-raximi-bai.html
락슈미바이의 영화 〈마티카르니카 잔시의 여왕〉 ☛ https://offhoarder.blogspot.com/2019/08/manikarnika.html
마라타 제국을 다룬 영화
파르잔드 Farzand 2018, 마라티어 영화
차트라바티 시바지의 부하 파르잔드가 단 60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무굴제국이 차지한 판할라 요새를 함락하고 되찾은 전투를 다룬다.
파르잔드는 탄하지 장군이 키운 부하이다.
마라티어 영화로 저예산이라서 한국 사극 드라마와 비슷한 내용 전개와 퀄리티임. 재미없었다.
탄하지 Tanhaji 2020, 힌디어 영화
차트라바티 시바지의 충성스런 장군 탄하지가 콘코다 요새를 되찾은 전투를 다룸.
아제이 데브근이 제작한 영화이다.
그래서 아제이 데브근이 멋있게 나오는 마초 영화.
파니파트 Panipat 2019, 힌디어 영화
남아시아의 운명을 바꾼 파니파트 3차 전투.
사소한 부분들은 창작이나 큰 에피소드들은 팩트 기반이어서
꽤 재밌었던 전쟁영화이다.
바지라오 1세의 아들들과 사다시브라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