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니파트 전투 - 인도 대륙의 역사를 바꾼 세 번의 전투


첫번째 파티파트 전투 1526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파니파트 


파티파트는 북인도의 하리아나 주에 위치한 인구 120만명의 작은 도시이다. 인도 역사에 중요한 전쟁이 세차례나 벌어진 곳인데, 지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여서가 아니라, 파니파트가 있는 지역이 평원이라서 전쟁하기 수월했기 때문에 세번이나 대전투가 벌여졌다고 한다. 


파니파트 신드롬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전쟁에서 결정권자가 결정적인 판단, 준비 또는 전략이 없어 우왕좌왕하다가 적군에 영토를 내어주는 경우를 말한다. 20세기 인도의 유명한 공군 준장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세 번째 파니파트 전투에서 마라타가 잦은 실수로 인해 결국 아프가니스탄에 패한 것에서 따왔다.  


3차 파니파트 전투 당시 인도 대륙. 델리의 북쪽으로 파니파트가 보인다
Charles Colbeck / Public domain




첫 번째 파니파트 전투 


1526년 4월 21일 
티무르의 바부르  VS 델리 술탄국의 이브라힘 로디 

결과: 델리 술탄국의 멸망과 무굴제국 창시


가운데 이브라힘 로디의 목이 있다. 아래쪽에 전투 코끼리
Public domain


바부르는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인도 침략에 나선다. 그는 델리 술탄국의 이브라힘 로디와 파니파트에서 전쟁해서 대승을 거둔다. 이브라힘 로디는 이 전쟁에서 죽는다. 이로서 델리 술탄국의 로디 왕조가 끝나고 바부르는 무굴 제국을 개국한다. 


바부르가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야포(소형 대포)를 약 20기 동원했다고 한다. 델리 술탄 왕조는 바부르 측보다 두 배 이상 많은 5만명의 군인과 무려 1000마리의 코끼리를 동원하고도 완패했다. 군사 수가 더 많음에도 총이라는 근대 기술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나보다.

아브라힘 로디의 묘
하리아나 관광

파니파트에는 아브라힘 로디의 묘가 남아있다. 아브라힘 로디는 델리 술탄국의 마지막 왕이다. 묘가 여태 남아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황제의 묘임에도 매우 초라한 것도 인상적이다.







두 번째 파니파트 전투




1556년 11월 5일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 VS 힌두왕 헤무


결과: 악바르 대제의 등장과 무굴제국 번영 



바부르의 아들 후마윤이 갑자기 죽어서 무굴제국의 후계에 혼란이 생긴 틈에 벵갈 지역의 힌두교 왕 헤무가 힌두교 영토 회복을 위해 델리로 진격했다.  
후마윤의 아들로 당시 13살이었던 악바르 대제와 그의 후견인 바이람 칸이 파니파트에서 헤무를 물리쳤다. 


헤무왕의 패배. 자세히 보면 전투 코끼리들이 활약하고 있다. 왜 웃고 있니



헤무 측은 3만명의 기사와 500마리의 전투 코끼리를 동원했지만 악바르 측의 만 명의 기사에 패했다. 악바르 측은 사상자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헤무 측은 5000명 사상자 발생. 

원래 헤무 측이 군사적으로 우세했지만, 전투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무 왕이 화살을 맞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군대를 지휘할 리더가 사라지니 그의 군사들도 와해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헤무 왕의 전투 코끼리 500마리의  활약이 대단해서, 이를 목도한 무굴제국도 전투 코끼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헤무 왕은 의식을 잃은 상태로 거의 죽은 상태로 생포되었다. 현장에서 악바르가 참수했다. 사실은 악바르의 후견인인 바이란 칸이 13살의 악바르에게 헤무의 목을 베라고 시켰으나, 악바르는 시체의 목을 베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바이란 칸이 설득해서 악바르는 목에 칼을 대는 시늉만 하고 바이람 칸이 헤무의 목을 베었다. 그의 목은 카불에 있는 델리 기념문 (Delhi Darwaza)에 내걸렸고, 목 없는 몸은 델리에 있는 푸라나 킬라(Purana Qila)에 걸렸다. 푸라나 킬라는 델리에 있는 가장 오래된 요새이자 관광지로 헤무왕이 자신의 황제 대관식을 한 곳이라고 한다. 


Raja Hemu's 'Beheading Place'
힌두 양식으로 지어진 헤무의 참수 기념관
Sudhirkbhargava / CC BY-SA

파니파트에 헤무의 목을 참수한 장소에 헤무의 참수 이벤트를 기념하는 헤무의 사마디 스딸(Hemu's Samadhi Sthal)가 남아있다. 

하리와나 주의 르와리에는 헤무 왕의 하벨리(대저택)이 있다. 그의 대저택은 1540년, 헤무 왕이 무역으로 잘나가던 시절에 포르투갈 스타일로 단장했다고 한다. 

Colonial architecture in Hemu's Haveli in Rewari
르와리(Rewari)에 남아있는 헤무의 하벨리 
Sudhirkbhargava / CC BY-SA








세 번째 파니파트 전투




1761년 1월 14일
마라타 제국의 사히브라오 바우 VS 두라미 왕국의 아흐마드 샤 두라니

결과: 마라타 제국의 상승세가 파니파트 전투로 꺾임. 마라타 제국이 약해지면서 영국의 인도 침략이 쉬워져서 불과  50년 후에 마라타 제국(동맹)은 영국에 패하고 와해된다. 




1707년 아우랑제브 황제의 죽음 이후 이빨 빠진 호랑이된 델리 왕국은 신흥 강호 마라타 제국의 보호 하에 들어간다. 
아프가니스탄에 새로운 왕국인 두라니 왕조가 들어서자, 마라타의 보호를 받는 무굴 제국은 두라니 왕조에게 마라타의 확장을 막아달라 부탁한다. 

당시에 마라타 제국은 델리를 지나 펀잡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했기 때문에, 두라니 왕국과 맞붙게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결국 두라니 왕조를 개국했으며 두라니 왕조 역사상 최고 영토를 가진 전투 군주 아마드 샤 두라니는 델리로 진격한다. 


세 번째 파니파트 전투. 갈색 말에 앉은 이가 아프간 군주 아마드 샤 두라니이다. 대포들이 >형으로 배치된 것이 보인다.
파니파트 영화에서도 이 전투신이 나온다

Anonymous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전투 과정은 힌디 영화 〈파니파트〉에 잘 나와있다. 마라타 제국은 유능한 인재들이 전투에 대거 참여했음에도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전투 후 파니파트의 패전병들은 아프가니스탄 측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14살이 넘는 소년들은 엄마와 자매 앞에서 참수당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파니파트의 많은 여성들이 강간과 불명예를 피하려고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사다브라오 바우, 그리고 페슈와의 아들 비슈와라오의 시체는 다행히 마라타 군에 의해 회수되어서 힌두 풍습으로 화장되었다. 페슈와 발라지 바지 라오는 이 전투의 패배로 큰 충격을 받고 몇달을 병상에서 앓다가 죽는다. 우울증이 죽음의 주원인이라고 한다.

이 전투에서 젊은 인재들이 다 죽어버려서 너무 많은 피해를 본 마라타 제국은 다신 회복하지 못한다. 전투 당시에 사다시브라오 바우는 29세, 비슈와라오는 19세였다. 

두라니 왕조의 압달리 또한 피해가 심각했다. 마라타 제국이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라타 제국과 평화 협정을 요청해야했다. 그는 페슈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다시브라오 바우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하며, 마라티가 계속 델리를 지배하는 것을 인정한다.


Mural of 3rd Battle of Panipat at war-site, Kala Amb, Panipat
파니파트에 있는 파니파트 전투 지역 공원의 3차 전투 묘사 
Sudhirkbhargava / CC BY-SA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파니파트 세번째 전투는 결국 양쪽 다 출혈만 심한 전쟁이었다. 3차 전투는 심지어 전투 묘사 그림을 구글로 구하기 힘들었다. 양쪽 다 출혈만 큰 전투라서 묘사화를 남길 기분이 아니었나 보다. 


세 번째 파니파트 전투로 마라타 제국이 힘이 빠지는 바람에, 마라타가 동쪽 델리와 펀잡에서 서쪽 국가들과 싸우느라 서쪽 영토에 소홀히 할때,  벵갈 지역을 쉽게 장악한 영국은 동쪽으로 진격 쉽게 마라타를 이길 수 있었다. 









Share:
Read More
, ,

마라타 연맹 - 마라티 인들이 세운 힌두교 제국

영화 〈파니파트〉에 나온 마라타 제국의 영토


마라타 제국 Maratha Empire



마라티 제국은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 주의 마라티 인들이 세운 나라로 1700년대에 인도의 북부와 중부 대다수를 점령한 18세기 인도 대륙의 강호였다.


무굴제국은 제국의 부흥을 이끈 황제 아우랑제브(타지 마할을 만든 샤 자한의 손자)가 1707년에 죽은 후 쇠퇴의 길을 걷고 1600년대 중반에 세워진 힌두교 국가인 마라티 제국이 1700년대에 대륙을 평정하고 1818년에 영국제국에 의해 해체된다.


무굴제국 최대 영토 1700년 
Gabagool / CC BY
마라타 제국 1760년 
Charles Colbeck / Public domain

영인도 제국 1909년 
Edinburgh Geographical Institute; J. G. Bartholomew and Sons. / Public domain 


마라타 왕국은 발리우드에서 인기있는 사극 소재인데 인도의 근대 역사가 외국에서 침략해서 세운 무슬림 왕국인 무굴제국 치하 3백년, 힌두교 인도인들이 세운 마라티 제국 150년, 그 후에 새로운 외세인 대영제국의 역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마라티 제국이 짧은 전성기를 누렸음에도 북부 인도인들 특히 힌두교인들이 마라타 제국에 애정을 갖는 것 같다. 


마라타 제국은 힌두교 국가였지만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했다. 그래서 동맹국이나 부하 중에 무슬림도 있었다. 




마라타 제국 vs 마라타 연맹 


마라타 제국은 차트라바티(황제)가 있는 왕국이나 후에 페슈와(수상)인 바지라오가 영토를 확장하고 권력이 막강해져서 실질적 통치자가 되었다. 일본이 천황이 명목상의 왕이었고 쇼군이 실제 권력자였던 것처럼 마라타 왕국도 차트라바티는 명목상의 왕이었고 실제 권력자는 페슈와였다. 페슈와 바지라오의 영토는 푸네였다. 그래서 푸네가 마라타 제국의 실질적 수도였다. 황제는 다른 도시에 있었다. 마라타 제국은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많은 힌두교 지역들을 제국 아래로 영입했다. 인도 애국주의자들은 이 나라를 마라타 제국이라 부르는 반면에, 영국 역사학자들은 마라타 연맹(Maratha confederacy)라고 부른다. 영국이 마라타 제국을 해체시키고 식민지화했기때문에 영국 사학자들이 제국보다 연맹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듯. 



Flag of the Maratha Empire
마라타 국기 









마라타 인물



  • 차트라바티 시바지 


Shivaji Rijksmuseum
차트라바티 시바지의 초상화 
Unknown author / CC BY-SA


시바지 보살레(1630년~1680, 재위기간 1674~1680)는 마라타 제국을 건립한 정복왕이다. 차트라바티는 마라티어로 황제란 뜻이다. 시바지 보슬레는 남인도를 침략해서 마하라슈트라 주의 작은 나라였던 마라타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힌두교 전통을 다시 살렸다.

인도에서 인기가 높은 왕으로 대중문화에서 말을 타고 칼을 높게 든 정복왕의 이미지와 함께 어진 왕으로 묘사된다. 마하라슈트라 주의 뭄바이의 국제공항 이름이 차트라바티 시바지 공항이다.

차트라바티 시바지의 동상
pixabay





  • 바지라오 1세 


바지라오(1700~1740, 재위기간 1720~1740)는 페슈와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살의 나이에 페슈와가 된다. 그는 39살에 죽을때까지 정복에 나서서 전승한 명장이었다. 바지라오는 마라타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자신의 영토 푸네에 샤니와르와다 궁전 요새를 지었다. 


샤니와르 와다 궁전 요새
Aakash.gautam / CC BY-SA 

샤니와르 와다 궁전 요새의 정원 
pixabay





뛰어난 정복자이자 통치자였던 바지라오는 사랑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정략 결혼한 부인과 사이가 좋았으며 후에 일부일처제 가풍을 어기고 결혼한 두번째 부인 마스타니와 사랑때문에 집안과 싸운 것도 유명하다. 바지라오가 샤니와르 와다 궁전에는 마스타니의 별궁이 있는데 왕궁 밖과 통하는 전용 출입문이 따로 있다고 한다. 바지라오가 집안 사람들로부터 마스타니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해준 곳이다. 



  • 사다시브라오 바우



Sadashivrao bhau
사다시브라오 바우



사다시브라오 바우(1930년~1961)는 바지라오의 조카로, 바지라오의 사후 페슈와가 된 바지라오의 아들 발라지 바지라오의 디완이었다. 디완은 페슈와의 총리. 황제의 총리인 페슈와가 실질적 군주이고 그 군주의 총리가 디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바지라오와 동생의 사이는 각별했는데, 동생은 31살의 나이에 전사했다. 사다시브라오도 30살의 어린 나이에 전사한다. 사다시브라오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20대 때 정치력과 군사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래서 발라지 바지라오의 부인은 남편이 시다시브라오를 차기 페슈와로 앉힐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파니파트 전투에서 전사하고 그의 죽음과 함께 마라타 제국의 상승세도 꺾인다. 




  • 마스타니  


무슬림 풍의 옷을 입은 마스타니
Mughal School / Public domain


북인도의 라즈푸트 힌두 왕국 분델칸드의 공주. 왕과 페르시안(이란인) 첩 사이에 낳은 딸이다. 엄마가 무슬림이기때문에 마스타니도 무슬림으로 취급받았다. 31살의 늙은 나이에 유부남 바지라오에게 시집갔다. 아버지 왕이 지참금으로 자신의 영토의 1/3을 바지라오에게 떼어줬다. 이 영토는 잔시, 사가르, 칼피이다.마스타니는 바지라오와 사이에 아들 삼셰르 바하두르를 낳았다. 마스타니는 힌두교인처럼 옷을 입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스타니의 엄마가 이란인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마스타니는 무슬림으로 취급받았고, 그녀의 아들 삼셰르 바하두르도 무슬림 취급을 받았다. 바지라오가 삼셰르를 크리슈나라오라고 힌두 이름을 지어주고 힌두 세례를 받게하려고 했으나, 힌두 사제들이 무슬림 엄마의 아들은 무슬림이라며 거절했었다.삼셰르 바하두르는 사다시브라오 바우와 함께 파니파트 전투에서 전사한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살아남아 후에 잔시의 여왕 락시미바이와 함께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한다. 영국이 이들과 전투에서 승리 후 마스타니 후손들의 영지를 폐지하고 몰수했다. 그후 후손들은 현재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 락슈미바이 
Rani of jhansi
독립영웅 락슈미바이
British Library / Public domain



잔시의 여왕 락쉬미바이. 잔시는 마스타니의 지참금으로 바지라오의 영토가 된 곳임. 
락쉬미바이는 마라타인이다. 마라티 브라민 집안 출신으로 페슈와 바지라오 2세의 영지 내에서 자랐다.




락슈미바이에 대해서 ☛ https://offhoarder.blogspot.com/2019/07/rani-raximi-bai.html
락슈미바이의 영화 〈마티카르니카 잔시의 여왕〉 ☛ https://offhoarder.blogspot.com/2019/08/manikarnika.html






마라타 제국을 다룬 영화





파르잔드 Farzand 2018, 마라티어 영화


차트라바티 시바지의 부하 파르잔드가 단 60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무굴제국이 차지한 판할라 요새를 함락하고 되찾은 전투를 다룬다.


파르잔드는 탄하지 장군이 키운 부하이다. 

마라티어 영화로 저예산이라서 한국 사극 드라마와 비슷한 내용 전개와 퀄리티임. 재미없었다. 












탄하지 Tanhaji 2020, 힌디어 영화



차트라바티 시바지의 충성스런 장군 탄하지가 콘코다 요새를 되찾은 전투를 다룸.

아제이 데브근이 제작한 영화이다. 
그래서 아제이 데브근이 멋있게 나오는 마초 영화. 









파니파트 Panipat 2019, 힌디어 영화



남아시아의 운명을 바꾼 파니파트 3차 전투.


사소한 부분들은 창작이나 큰 에피소드들은 팩트 기반이어서 
꽤 재밌었던 전쟁영화이다. 

바지라오 1세의 아들들과 사다시브라오가 나온다. 









Share:
Read More
, ,

미드소마 Midsommar 2019 - 안무서운 공포영화




아리 애스터의 두번째 장편 영화 〈미드소마〉는 미국 뉴욕의 대학원생들이 스웨덴의 특별한 커뮤니티의 하지 축제에 놀러가는 이야기이다. 그냥 2시간 30분 내내 사이비 종교 인간들 노는 거 구경하는 영화이다. 










영화 처음에 주인공의 집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인형의 집 같음.


위의 짤에서 오른쪽 부엌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작은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몰아넣은 게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세트장이다. 실제 사람 사는 집이면 가스레인지에 후드가 없을 리가 없고 냉장고도 너무 작다.  


위의 짤의 반대편. 구조가 좀 특이한데(침실과 욕실이 왼쪽 문인 듯) 아무래도 세트장이라서 그런 듯.


남자친구의 집인데 화면 구도가 뭔가 연극적이라고 느껴졌다. 


위 거실의 맞은편임. 이것 또한 인형의 집 같음.


그러고보니, 〈유전〉은 오프닝시퀀스가 인형의 집이 실제 집으로 오버랩되며 시작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이 인형의 집을 좋아하나봄.

위의 장면도 인형의 집 같이 아기자기 예뻤다.


그리고 연극스러운 장면도 많았다.

이 마을이 뭔가 인위적이고 기괴한 풍경이었음.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는... ...

주인공 캐릭터들이 그닥 매력이 없어서 감정 이입이 되지 않다보니, 이들이 곤란을 겪어도 시큰둥했다. 


평면적이고 연극적인 화면들이 예뻤다.


이것 역시 평면적 화면. 세트장들이 다 예뻤다. 








화면은 예쁘긴 한데도 2시간 반 내내 시큰둥하게 봄. 
전혀 안무섭다. 내용도 평범하고. 사이비 종교 얘기 상상가능한 장면들만 나옴.
(이 감독의 전작 〈유전〉도 후반부의 사이비 종교 집회 장면이 그랬었다. 평범한 전개였음)
상영 시간을 90분으로 정하고 편집했으면 더 알차고 재미난 이야기가 됐을 거 같아.













Midsommar


미국, 2019, 호러



★★

감독: 아리 애스터
출연: 플로렌스 퓨
         잭 레이너



Share:
Read More
, , , ,

파티 파트니 아울 워 Pati Patni Aur Woh 2019 - 구닥다리 로맨틱코미디





발리우드의 핫가이 카르틱 아리얀의 신작 〈Pati Patni aur Woh〉 (남편, 아내 그리고 그녀)

1978년 발리우드의 동명 영화  〈파티 파트니 아우르 워〉를 각색한 영화라는데, 잘못 각색한 듯.

1978년 Pati Patni Aur Woh

1978년 작 포스터만 봐도 뭔 내용인지 짐작 가능하다.
부모가 결혼하라고 하니까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와 얼굴만 보고 결혼했고, 현모양처인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서양 옷을 입은 신식 여성을 직장에서 만나서 홀딱 빠져서 쫓다가 현모양처의 소중함을 알고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얘기 ㅋㅋㅋㅋㅋㅋㅋㅋ
인도 못지않게 가정을 중시하는 한국도 옛날에 이런 내용의 드라마나 영화 있었던 것 같다. 
'어찌되었던 가정은 절대 깨트려선 안되고, 가정이 최고이고, 마누라는 무조건 현모양처야 짱짱짱' 이데올로기ㅋ


2019년에 이런 내용의 영화가 나오다니. 당연히 흥행과 평가 폭망했다.


그래도 요즘 시대상을 반영해서 여자들의 캐릭터를 바꾸긴 했다. 


아내 베디카(부미 페디네카르)는 전업주부가 아니라 학원 강사이고, 혼전 연애 경험이 있고, 성관계 경험도 있다고 주인공과 중매 자리에서 밝히는 쿨한 여자이다. 델리의 클럽과 술집이 자신들 부부에게 어울리는 라이프 스타일이라 믿고 델리로 이사가자고 남편에게 종용한다. 남편 말만 따르는 지고지순한 현모양처가 아니다. 하지만 남편 친구는 '어머니 상 같은 훌륭한 현모양처'라는 평가를 준다. 
여전히 '어머니 같은 모습'이 최고의 아내 이미지인 듯.


노란 옷에 투명테이프 붙임

남편이 홀딱 빠지는 미혼여성 타파샤(아난야 판데이)는 델리에서 성공한 사업가이다. 의류 공장을 짓기 위해 칸푸르에 왔다가 주인공과 만난다. 


친투(카르틱 아리얀)는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엔지니어 전공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공무원이 되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중매 결혼한 평범한 중산층 남자이다. 

아빠가 공부 열심히 하고, 인기있는 전공인 엔지니어를 전공하고,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되고,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했는데 아버지가 말한 '장미빛 인생'은 자신의 운명이 아닌 거 같다고 느끼고 있다. 남이 하라는 일만 다 했더니 삶의 공허함을 느끼는 듯. 2세 출산이 남았는데 부모가 빨리 아이를 가지라고 성화이지만, 아내가 원치 않는다. 아내는 델리로 이사가는 것이 우선순위이기때문. 자기 의사가 없는 친투는 이것도 저것도 상관없음. 다만 델리로 이사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시키는 대로 하는 친투이다보니 델리라는 낯설고 큰 동네에 가서 도전하는 게 겁이 나는 듯. 







이런 친투이기 때문에 삶의 스트레스가 크다. 
카르틱 아리얀이 〈사랑한 이후〉에서 보여줘서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일장 연설씬이 이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내용이 처절하다. '엄마를 조금이라도 챙기면 마누라에게 마마보이가 되어버리고, 마누라에게 다정하면 엄마한테 팔불출 소리 들어야한다, 이 나라에서 남편이라는 것이 죄이다'라고 하소연한다. 아들, 남편으로서 가족의 기대에 부응해야함을 하소연하는 그의 연설이 꽤 설득력있지만, 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친투는 도시여자 타파샤에게 홀딱 빠져서, 부인이 바람을 핀다고 거짓말을 하며 불쌍한 유부남 행세를 하는 것과 친투가 부모의 기대, 아내의 기대에 맞춰 살아서 공허한 것과 뭔 상관.

카르틱 아리얀이 요즘 발리우드 핫가이다보니, 이 영화 촬영때 아난야 판데이와 연애설이 많이 나왔었다.


결말도 매우 뻔하다.
결국 아내의 소중함을 알고 돌아가는 얘기. 다시 아내와 재결합한 친투가 '나 델리로 이사가지 않겠다. 나도 내가 하고픈 말 하겠다'는 발언은 절대 나오지도 않는다 ㅋ 그게 친투에게 꽤 큰 스트레스였는데도. 
바람 핀 전력이 있는 죄인이니까 아내가 원하는대로 해줘야 겠지. 
결국 이 영화의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친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영화 끝까지 가족의 기대에 맞춰주는 중산층 남자임.






장난감같은 칸푸르 기차역 
뒤에 보이는 가게가 칸푸르에서 유명한 라두 가게라고 한다


이 영화는 칸푸르에서 찍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Bala〉도 칸푸르에서 찍었는데 요즘 발리우드에서 급부상한 촬영지인 듯. 칸푸르는 다국적기업의 공장이 많아서 꽤 부유한 대도시라고 한다. 그러나 관광객의 볼거리는 없는 듯. 친투의 마누라도 작은 동네인 칸푸르를 떠나 화려하고 재미난 대도시인 델리로 이사가고 싶어한다.






Pati Patni aur Woh


힌디어, 2019, 로맨스코미디

★★



감독: 무다사르 아지즈  
        Mudassar Aziz
출연: 카르틱 아리얀 
         Kartik Aaryan
         부미 페데네카르 
          Bhumi Pednekar 
          아난야 판데이
          Anaya Panday

촬영장소: 칸푸르, 우타르 프라데시
               Kanpur, Uttar Pradesh




















Share:
Read More